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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대로 상부 공원화에 따른 공공미술작품 설치계획안에 대한, 어떻게 저런 공격적이고 무지막지한 작업이 나왔는지에 대한 기록

주어진 조건은 명확했다: 공공미술작품으로 전망대를 만드시오.

피라네시 (Giovanni Battista Piranesi, 1720-1778)의 지하감옥 연작에 감명받아 그려본 부유하는 계단 (2019, ipad) 나도 연작으로 그려볼까 생각중이다.

피라네시 (Giovanni Battista Piranesi, 1720-1778)의 지하감옥 연작에 감명받아 그려본 부유하는 계단 (2019, ipad) 나도 연작으로 그려볼까 생각중이다.

부유하는 삼차원의 미로라는, 정지현 작가님과 생각했던 최초의 개념은 피라네시 (Giovanni Battista Piranesi, 1720-1778) 에 대한 지극한 애정에서 시작되었다 . 공교롭게도 (감사하게도) 둘 모두 피라네시의 충실한 팬이었던 덕에 이 어둡고 복잡하며 위트넘치는 공간을 어떻게던 풀어내 보자는 생각에 어렵지 않게 도달할 수 있었다. 사실, 부유하는 미로가 실재로 만족스럽게 구현된 예를 본적은 없었다 (아직도 못 본것 같다). 부유하는 미로를 표현해 낼수만 있어도, 만들어 낼수만 있어도 충분히 의미있는 작업이 될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쇠기둥들의 숲 사이로 나있는 삼차원의 미로는, 평소 계단 집착증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는 언제나 솔깃한 주제였으니까. 하지만 꽤 긴 시간의 토론 끝에 그냥 구불거리는 삼차원의 계단이 또 뭐가 그리 새롭겠냐는 생각에 이르렀다. 돌파구 없는 토론과 프로토타이핑(삽질이라고 부른다)이 계속 되었고 프로젝은 멀리있는 산에 여러번 다녀올 수 있었다.

2개 차원의 내부와 0 - A = -A 를 표현하는 다이어그램

2개 차원의 내부와 0 - A = -A 를 표현하는 다이어그램

부유하는 계단과 공간에 대한 스터디모델. 또는 산에 다녀온 기억들

부유하는 계단과 공간에 대한 스터디모델. 또는 산에 다녀온 기억들

부유하는 미로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과 진부해질지 모르는 삼차원 계단은 피하고 싶다는 상반된 욕망은 삼차원의 미로를 만들되 통로와 계단을 만드는게 아니라 동선이 비어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러니까  어떤 덩어리에서 통로가 되는 선형의 공간을 덜어낸, 벌레먹은 사과같은 공간을 만들어 보자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사과의 과육처럼 덩어리의 내부를 다 채울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콘크리트 같은 재료로 채우려고 한다면야 못할것도 없겠지만 너무 무거워 보일 수 있다는 비판이 있었고 (또 얼마나 공격적으로 보일 것인가...어쨌든 무겁다는 이 비판은 끝까지 프로젝을 쫓아다닌다) 우리는 속이 빈 반투명의 덩어리를 상상하게 되었다. 속이 비었기 때문에 다른 두 차원의 공간이 서로 면하는 색다른 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 외부와 파먹은 내부 그리고 속이 빈 내부사이의 재미있는 관계를 우리는 과연 얼마나 잘 풀어냈는지는 살짝 의문이 든다. 아마 놓치고 있는 많은 가능성들이 있지 않을까.

사각형에서 사각형의 공간을 덜어냈던 메스 스터디. 녹슨 철로 모델을 만들자는 얘기가 나왔다. (만들걸 그랬다)

사각형에서 사각형의 공간을 덜어냈던 메스 스터디. 녹슨 철로 모델을 만들자는 얘기가 나왔다. (만들걸 그랬다)

덩어리를 무엇으로 할것이냐가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그게 외부가 되어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부분을 규정할테니까. 그래서 덩어리의 성질과 모양이 모두 중요해졌는데 결론은 최대한 무(無)에 가깝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굳이 도식으로 표현하자면 A에서 B 를 빼서 C를 만드는게 아닌 0에서 A를 빼서 -A를 만드는 것에 가깝다고나 할까. 무에 가깝게 만들기 위해 집중한것은 형태와 물성이었다. 어떻게 하면 존재하는 그 무엇을 (그것도 나름 거대한) 사라지게 만들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물론 그런게 가능할 리가 없다는데 모두가 동의했지만 투과성과 반사를 이용하여 주변환경 속에 그 존재를 최소화하는 물성과 성격을 최소화 할 수 있는 형태를 찾아 보기로 했다. 형태는 외부에 날이 존재하지 않아 방향성을 갖지 않는 원통의 형태가 낙점되었지만 물성은 주변을 반사시키면서 내부가 드러나는 어떤 것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심사위원이 그런게 어딨냐고 물어볼까봐 만들었던 샘플. 되려 너무 반짝거려 도움이 안됐을지도 모르겠다.

심사위원이 그런게 어딨냐고 물어볼까봐 만들었던 샘플. 되려 너무 반짝거려 도움이 안됐을지도 모르겠다.

반사재질의 익스펜디드 메탈에 주변이 비춰진 모습

반사재질의 익스펜디드 메탈에 주변이 비춰진 모습

공공미술이라는 특성상 무한한 예산이 있을리 만무했고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물성을 갖는 저렴한 외장재를 찾아내야만 했다. 무질서하고 다양한 고민 끝에 한번 사용해 본 적이 있는 익스팬디드 메탈에 반사재질을 입힐 수 있다는걸 알게 되었고 을지로를 수소문한 끝에 샘플을 제작할 수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외장재 샘플은 꽤 만족스러워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외장재는 주변을 투영했고 멋지게 왜곡시켰으며,  내부를 드려다 볼 수 있게 해주었고 비늘같은 독특한 질감도 선사했다. 무엇보다 굳이 전망대 위에 올라가지 않아도 전망대의 뷰를 다른 심상으로 감상하게 해주는 독특한 이미지를 뿜어낼 수 있었다. 심사위원들의 이해를 돕기위해 발표 당일날 나는 외장재 샘플을 들고 발표에 임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빛나는 외장재는 심사위원들의 집중포화를 맞게 되었다. 주된 비판은 반사 재질의 외장재가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시각적 공해가 상당할 거라는 것이었다. Anish Kapoor의 Cloud Gate를 예로 들며 간신히 버텨봤지만 주변 아파트로부터의 민원이 상당할 것이라는 대다수의 비판에 딱히 답할 말은 없었다. 에펠탑도 엄청난 민원에 시달렸다고 말했어야 했나 싶기도 하고…

어둡지 않게 만드려던 시도는 그 뒤에 숨어있던 어두운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작가들의 의도에 의해…

어둡지 않게 만드려던 시도는 그 뒤에 숨어있던 어두운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작가들의 의도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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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입 시퀀스

진입 시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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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글거리는 맨트와 야경.

오글거리는 맨트와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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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네시도 본 적 없는 부유하는 미로를 만들어 보자는 소박(?)한 의도에서 시작한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그렇게 거대한 외부 면적과 복잡한 동선과 두 차원의 내부와 공격적인 (aggressive의 번역체) 외향을 가진 괴물같은 구조체가 되었다. 급하게 사랑하게된 프로젝트였던 만큼 낙방 후 그 사랑은 급하게 식었는데, 사랑이 식은 주된 이유는 아마 내가 봐도 너무 넓었던 (많은 비판에 시달렸던) 매스의 표면적에 대한 의구심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기록하며 다시 곱씹어보니 매스가 꽤 적당해 보인다. 저정도는 있어야 주변에 동화되어 사라질 것 아닌가.